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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인사만 잘해도 먹고는 산다!

한국에 있는 한 교회를 방문했을 때 일이다. 예배당 정면에 ‘인사만 잘해도 먹고는 산다!’라고 쓴 큼지막한 표어가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이런 세속적인 표어가 예배당에 붙어 있어도 되나?’ 그 별난 표어를 본 순간 마음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표어를 곱씹을수록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서는 인사성 바른 사람이 좋은 인간관계를 맺게 되고, 사회에서도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 최소한 밥은 굶지 않고 먹고는 살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교회에서 세상에서 밥 굶지 말라고 이런 표어를 붙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신앙도 필요하고, 말씀도 중요하고, 믿음도 있어야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삶의 태도다. 그 삶의 태도가 믿음을 만들고, 삶의 태도가 말씀을 실천하고, 삶의 태도가 곧 세상에 드러나는 신앙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런 삶의 태도가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부분이 인사성이다. 만나면 반갑다고 인사하고, 헤어질 때는 아쉽다며 손을 맞잡고 인사하는 것은 인간관계의 기본이다. 작은 친절에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실수했으면 미안하다고 인사만 잘해도 세상에서는 믿을만한 사람이 될 것이다.     부모나 연장자를 대하는 도리에 대해 기록한 예기(禮記)의 가르침 중에 ‘출필고(出必告) 반필면(反必面)’이라는 말이 있다. ‘나갈 때는 반드시 아뢰고, 돌아오면 반드시 얼굴을 뵙고 인사드린다’는 뜻이다. 물론, 이 말은 자식이 부모나 연장자에게 당연히 지켜야 하는 법도를 말하지만, 신앙인이 하나님을 섬기는 태도이기도 하다. 하나님께 ‘출필고 반필면’하면서 인사 잘하는 사람을 교회에서는 예배자라고 부른다.     또, ‘관리나 직원의 임용, 해임, 평가 따위와 관계되는 행정적인 일’을 인사라고 한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은 인재를 발굴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인사’가 모든 일의 기본이요 또,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인사만 잘해도 먹고는 산다’는 말에는 사람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잘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도 포함된다.   연말이 되면 사람을 뽑는 일이 여기저기서 일어난다. 교회에서는 새로운 직분자를 선출하고, 임원을 세운다. 각 단체나 기관에서도 한 해를 마감하면서 임기를 마친 이들을 대신할 사람을 뽑기 위해 마음을 모은다. 미국에서는 나라를 이끌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뽑든, 작은 모임을 이끌 사람을 세우든 인사가 중요하다. 그러기에 인사만 잘해도 그 단체가 유지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인사만 잘해도 먹고는 산다’는 말을 마음에 새기고 주위 사람과 바른 관계를 맺으며, 신앙생활에 더욱 충실하며, 사람을 존중하며 세우는 삶을 살겠다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도 인사 잘하며 살자. 산책하는 길에 마주치는 낯선 이웃에게 작은 미소로 인사하자. 차선을 양보해 준 운전자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자. 식당이나 가게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보자. 작은 인사를 나누다 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조금은 더 밝아질 것이다. 이 아침에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잘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이 아침에 인사 표어가 예배당 순간 마음 예배당 정면

2024-09-18

[이 아침에] 옷장

오늘도 정리 정돈과 버리기를 시작한다. 눈만 뜨면 되풀이되는 일과다. 추억이 담긴 옛 사진을 하나씩 들여다보듯, 옷들을 꺼내 한 가지씩 입어본다. 몇 해 전까지 잘 맞던 블라우스의 앞 단추가 채워지지 않는다. 탐욕과 욕심으로 세월 속에 몸이 불은 탓일까. 그런가 하면 소우주의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이으며 교량 역할을 하던 허리는, 신세대에 밀려난 구세대같이 균형을 잃었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불량한 살과 절제 못 한 나잇살까지 더해지며, 옷이 상체에서 하체로 내려가지를 않는다. 두꺼워진 허리는 아날로그 세상에서 디지털 세계로 옮겨가지 못하는 내 영혼을 닮았나 보다.   사람 모양의 마네킹에 인조 조명으로 혼을 불어넣으면 마네킹이 새 생명을 얻은 듯이 보이듯, 옷장 안에 불을 켜자 나의 지난 삶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다. 지난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 가며, 험한 세상 속에서 나를 날게 해준 때 묻고 정든 옷들이 애틋해진다. 문득, 지나간 세월의 흔적을 지우고 버려야만 하는 생명체의 한계가 슬픈 강물처럼 가슴에서 흘러내린다.   서른 개 이상의 큰 도네이션 백이 채워지자, 마침내 옷장은 비워졌다. 돌아보면 장에 걸린 옷들에는 네 계절이 춤추고 있었다. 꽃 피는 봄과 푸른 여름이 있는가 하면, 낙엽 흐느끼는 가을과 눈꽃 피어나는 겨울이 숨어 있었다. 삶을 동반하며 내가 누구인지를 드러내 보여주던 나의 분신들. 어쩌면 삶은 옷과 내가 만든 찰나의 팬터마임들이 이어져 탄생한 것은 아닐까.     텅 빈 옷장은 허공이 되어 침묵하고 있다. 이제 온갖 삶이 자취를 감추자 빈 벽만 남아 무한대의 우주와 연결된 빈 옷장,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어쩌면 수많은 언어를 뱉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것은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듯, 세간의 모든 실체는 쉬지 않고 변하는 것이라고 얘기하며, 그러기에 모든 실체는 머무름 없이 흐르는 것이고 삶은 순간의 연속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광활한 하늘과 통한 옷장에는 머지않아 구름과 달과 태양이 뜨게 되리라. 그리하여 그것은 낮의 밝음과 밤의 어두움을 품게 되리라. 밝은 희망과 선, 밤의 어두움과 악(惡)을 간직하게 될 옷장, 활짝 열린 그것은 밝음과 어두움 그리고 선과 악을 품은 작은 우주로 변하리라.     어찌 보면 옷장은 나의 마음을 닮았는지도 모른다. 삶의 모든 것을 품을 수 있지만, 어느 날 비워지면 품었던 존재조차 사라지는 옷장, 그것은 온갖 삶과 삼라만상을 품을 수 있지만 비우려 들면 찰나에 비울 수 있는 내 마음과도 흡사하지 않을까. 영혼의 비움과 채움. 둘은 썰물과 밀물처럼 한 몸이기에 비워짐은 또 다른 채워짐을 의미할 것도 같다.     삶이 담겼던 옷장에서 쓸모없는 것들을 비워내듯, 생에 독이 되는 사념들을 매 순간 마음에서 지워 내리라. 아집과 아만, 집착과 욕심 그리고 오만과 편견을 제거해 버리면, 마음은 출렁대는 자유와 풍성한 여유로움으로 물밀듯 채워질 것 같다.  김영애 / 수필가이 아침에 옷장 옷장 그것 윗부분과 아랫부분 순간 마음

2022-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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